닛산, 미쓰비시에 이어 르노 회장직도 박탈…일본식 기업풍토 바꾸려다 실패
그는 진정 현대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되려 했던 것일까. 그도 보나파르트가 코르시카섬에서 태어났듯, 브라질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건너갔고, 국가가 아닌 기업의 영역에서 황제가 되려 했다.
카를로스 곤(Carlos Ghosn, 64)은 프랑스의 르노에서 타이어회사 미셀린(Michelin)에서 18년간 일하다가 프랑스 르노(Renault)자동차를 확장해 일본 닛산(Nissan)과 미쓰비시(Mitsubishi) 자동차 등 세계 굴지의 3개 자동차 회장을 겸직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세 자동차 회사에서 회장직을 내놓고 도쿄의 구치소에서 식성에도 맞지 않는 일본식 밥을 먹고 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와의 전투에 패해 이탈리아령 엘바섬에서 유배되었듯이 일본 땅에서 유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 닛산자동차 큐슈공장을 찾은 카를로스 곤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24일 르노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카를로스 곤이 르노 회장겸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정부는 르노자동차의 지분 15.01%를 가진 최대주주다.
카를로스 곤은 2017년 4월 닛산자동차에서 CEO 자리를 사퇴하고, 일본인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에게 CEO를 넘겨주고 회장직만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곤은 연봉 허위신고와 배임 혐의로 지난해 11월 19일 하네다 공항에서 일본 검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곧이어 11월 22일 닛산 이
사회는 만장일치로 그의 회장직을 해촉했다. 이어 11월 26일 미쓰비시 자동차도 그의 회장직을 해임했다.
이에 따라 르노-닛산-미쓰비시의 거대한 자동차 연합체에서 곤은 모두 물러나게 되었다. 게다가 발찌를 찬 채 도쿄를 떠나지 않겠다는 그의 요청도 일본 법원에 의해 묵살됨에 따라 국제미아가 되었다.
▲ 카를로스 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에서 보면 그다지 크지 않다. 곤은 2011~2015년 유가증권보고서에 5년간의 연봉 50억엔(약 500억원)을 축소 신고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 정도 금액은 웬만한 글로벌 대기업의 CEO들이 받는 금액이다. 하지만 일본 검찰과 법원은 그를 구치소에서 내보내 주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미디어들은 이상한 나라의 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은 자국법을 적용해 외국인 경영자를 가둬 놓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 법원이 보석금을 받고 중국 화웨이의 멍완저우(孟晚舟) 부회장을 석방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가 일본 실정법상 어떤 혐의를 받고, 어떤 처벌을 받을지는 여기서 미뤄두기로 하자. 다만 한때 세계 자동차업계의 황제가 되려 했던 그의 꿈이 어떻게 무산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9년 프랑스의 르노 자동차는 파산 직전의 일본 닛산 자동차에 50억 달러를 투자한다. 그 결과 르노는 닛산의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재무책임자(COO) 이상의 경영진을 선임할 권한을 갖게 되었다. 반면에 닛산은 르노의 지분 15.0%만 쥐면서 상호 투자했지만,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다. 결국 일본의 2위 자동차회사는 프랑스의 자회사가 된 것이다. 르노는 동양과 서양의 거대 자동차 회사를 연합해 독일의 폭스바겐(Volkswagen)을 넘어 세계 자동차 시장을 제패하겠다는 꿈을 드러냈다.
카를로스 곤은 처음에 이름이 드러난 경영자는 아니었다. 그는 닛산을 인수한 직후 재무를 총괄하는 COO 겸 부사장으로 닛산을 맡게 된다.
이때부터 카를로스 곤의 실력이 나왔다. 그가 미셸린 근무 시절에 보여준 탁월한 경영능력이 평가받았다.
곤은 COO를 맡은 직후 1999년 도쿄 모터쇼에서 닛산 회생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내용인즉, 부채를 축소하고, 이익을 내지 못하는 5개 공장을 폐쇄하며, 직원 2만1,000명을 해고하는 것이었다. 신차 발표계획도 내놨다.
그는 나폴레옹처럼 거칠고 솔직했다. 그는 닛산의 일본적 풍토에 프랑스식 비즈니스 컬쳐를 도입했다.
일본 기업의 종신고용제, 연공서열제가 불필요하다며 철폐하고, 부품공급업체를 우대하는 전통적인 일본 기업의 방식을 깨뜨렸다. 그는 자신의 계획 연도 다음 해에 이익을 내지 못할 경우 COO 자리를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어쨌든 그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 르노에 인수된지 4년후인 2003년, 닛산은 세계에서 가장 수익을 내는 자동차회사로 부상했다. 덕분에 르노는 2010년에 세계 자동차업계 3위로 부상하고, 전세계 자동차 생산의 10%를 차지하게 되었다.
2002년 미국의 포춘지는 그를 올해의 아시아 비즈니스맨으로 선정했고, 2003년 미국 외에 10대 영향력 있는 기업인으로 뽑았다.
2005년 그는 르노 자동차의 회장겸 CEO가 되었고, 2008년 닛산 자동차에서도 회장겸 CEO가 되었다.
그는 일본에서 영웅이 되었고, 미디어의 각광을 받았다. 일본 만화책에서도 그는 스타가 되었다. 그는 나폴레옹처럼 블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인물이었고, 산업계의 기적의 인간으로 떠올랐다.
▲ 닛산 요코하마 공장에서 카를로스 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그를 내리막으로 밀어낸 것은 독선이었다. 그는 칼을 휘들렀다. 코스트 절감에 주력했다. 자신이 세운 목표에 중간 간부들이 힘들어 했지만, 그는 목표를 우선시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코스트 킬러’(Le Cost Killer), 모든 것을 고칠수 있는 ‘미스터 픽스’(Mr. Fix It)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휘두른 칼에 많은 일본인들이 다쳤다. 닛산 소속 많은 임원과 직원들이 그에 대한 믿음을 상실해 갔다. 나폴레옹은 백전백승이 아니었다. “나를 믿고 따르라”는 그의 명령에 부하들의 실망이 커갔다.
미국 포드 자동차에서 그를 두 번이나 모셔가려고 제의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포드의 빌 포드 회장에게 전권을 달라고 했는데, 그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GM에 지분 9.9%를 쥐고 있는 억만장자 투자자 커크 케코리언(Kirk Kerkorian)이 자금난에 휘청이는 GM을 살려내기 위해 그를 데려가려 했지만, 무슨 연유에선가 물거품 되었다.
2007년 닛산은 전기자동차(EV)에 50억 달러 투자하고 2010년에 시험차를 내놓았지만, 판매가 저조했다. 그는 임원들을 족쳐 판매를 독려했지만, 시장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르노-닛산의 핵심에서 활동하면서 점점 투자자와 미디어, 경쟁자들을 설득하기 어려워 갔다.
닛산에서 그의 후계자로 꼽히던 인물들도 하나씩 그에게 등을 돌리고 회사를 떠났다.
그런 와중에 2016년 10월 닛산은 파산 위험에 놓인 미쓰비시 자동차의 지분 34%를 인수했다. 르노는 닛산을 통해 미쓰비시를 지배하게 되었고, 곤은 이 미쓰비시에서도 CEO 회장이 되었다.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3개사 자동차 회장겸 CEO를 겸하게 된 것이다.
그의 마지막 실수는 CEO 자리를 내놓고, 그 자리에 믿었던 사이카와 히로토를 앉힌 것이었다. 내 사람인데 설마 했을 것이다. 일본인에게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가 있음은 우리는 그토록 당해보아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프랑스인은 일본인의 속마음을 몰랐다.
르노는 닛산의 지배주주다. CEO도 지명할수 있다. 곤은 CEO를 그만두고 후계자로 일본인 사카와를 지명했다. 닛산 내부로부터 나오는 불만을 완충시키자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선택한 후계자에 의해 닛산의 요코하마 본사에서 쫓겨났다. 당시 닛산에 흘러다닌 루머는 곤이 르노와 니산을 합병하려 시도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루머가 닛산 이사들을 격분케 했다. 그나마 별도 회사로 존재하면 일본 기업 나름의 자율성을 갖는데, 합병을 하면 그것마저 빼앗기므로, 일본인 임원들의 상실감이 컸을 것이다. 대한제국을 합방할 때 일본인들은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나 읽었을까.
곤은 뒤늦게 사이카와가 배신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축출하려 했다가 오히려 쫓겨나게 되었다고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했다.
프랑스에선 닛산 임원진에 대해 배신자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14만명 직원을 보유하고, 일본 경제의 주춧돌인 회사를 살려 놓았더니, 이제와서 받지도 못한 연금을 놓고 횡령이라고 주장하며 CEO를 구속했다는 것이다. 카를로스 곤은 퇴직후 받는 연금 조건이 보고하지 않아도 될 사항(non-binding)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본 검찰은 국내법을 이유로 들은척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모기업인 르노가 닛산의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요구했지만, 닛산의 일본인 이사들은 주총 개최를 거부했다. 오는 6월 결산 및 정기주총까지 르노는 발이 묶여 있다.
곤의 가족들은 “일본인 임원들의 반란”으로 규정하며, 일본 검찰과 재판부가 면회도 시켜주지 않는다고 항의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탈출해 다시 황제가 되었듯이, 카를로스 곤도 재기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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